세계 7대 불가사의

Posted by 정보튜브
2017. 7. 4. 10:36 재미있는 정보

세계 7대 불가사의



쿠푸왕()의 피라미드


2008년 기준, 이집트에 모두 138기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대다수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파라오나 배우자들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가장 먼저 알려진 이집트 피라미트는 이집트 북부의 멤피스 사카라지방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최초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630년부터 2611년까지 이집트 제3왕조 때 지어진 파라오 죠세르의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다. 이 피라마드와 주변의 건축물들은 설계자 임호텝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마름돌로 쌓아올린 건축물로 인정받는다.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인부들은 거의 수천명에서 2만, 혹은 10만명까지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유명한 이집트 피라미드는 기자 피라미드로써, 이집트 카이로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제 4왕국때 지어진 기자피라미드들 중 몇몇은 역사상 가장 큰 건축물로 평가된다. 기자 피라미드중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큰 피라미드다. 이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실존하는 건축물이다.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


1세기 히브리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랑하는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정원을 건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긴 했지만, 정이 들었는지 몰라도 그는 아내를 굉장히 아끼고 사랑했었는데, 산과 푸른 초원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고향과는 다른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바빌론의 삶에 지쳐 향수병을 앓았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아내를 위해 아내의 고향을 닮은 정원을 건설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가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는 것.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기위해 메디아 제국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 메디아의 공주 아미티스와 혼인을 했다. 메디아 제국과 혼인 동맹을 선사시킨 것인데 이 동맹의 힘 덕에 이후 기원전 610년, 신바빌로니아, 메디아연합군은 아시리아를 무너트리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가 죽은 지 43년 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바벨탑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올림피아의 제우스상(像)


안티파르토스의 시에서 등장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기원전 5세기경에 건설된 제우스 신전 내부에 위치한 좌상으로 기원전 435년에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의해 조각되었다. 페이디아스는 8년에 걸쳐서 제우스 상을 만들어 냈는데 당시 모든 이들이 그 조각상의 위엄에 압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과거에는 실존 여부가 불분명 했으나 1958년, 제우스 신전 터에서 제우스 상의 작업장 유적이 발굴되면서 제작 년도등이 확실해 졌다.


이후 제우스 상은 394년에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475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상이 위치해 있던 제우스 신전은 426년에 로마 전역에 신전파괴령이 내려지며 사라졌으며 522년과 55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형체가 사라졌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殿)


청동기 시절 부터 해당 신전은 존재해왔는데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신전을 아마존이 건설 한것으로 추측했다. 기원전 7세기에 홍수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 이후 기원전 550년에 리디아의 마지막왕 크로이소스가 크레타 출신의 건축가인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에게 건설을 의뢰해서 건설 되었다. 이 시기 건설된 신전은 매우 화려해서 높이만 무려 30 m에 너비도 약 55×110 m로 현재의 축구장과 비슷한 규모였다. 또한 바다가 보이는 높은 곳에 건설 되어서 에게해 10 km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니 그 위엄이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이후 로마 시대까지 존재했지만 서기 268년, 고트족의 약탈로 파괴되었고, 해당 신전의 자리는 잿더미가 되었다. 이후 신전이 재건 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불분명 한데 신전의 일부 석자재는 다른 신전의 석자재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하기아 소피아의 주 기둥이 바로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을 이용해 만들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할리카르나소스(현재는 터키의 남서쪽 해안 도시 보드룸)에 있었던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 마우솔레움은 무덤건축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11~14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1409년 십자군이 여기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는 이미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굴러다니던 돌덩이들은 1494년 십자군 원정 때 보드룸 요새를 짓고 보수하는데 사용된다. 그렇게 1900년간 원형이 보존되었던 영묘는 완전히 사라지게됐다. 일부 파편들은 남겨져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었다.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대거상()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 있었다고 하는 청동 거상. 기원전 305년에 있었던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모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폴리오르케테스의 포위 공격을 이겨낸 로도스에서 포위군이 남기고 간 장비들을 처분한 돈을 이용해 도시의 수호신인 헬리오스에게 봉헌하기 위해 세웠다.


완공된 지 56년이 지난 기원전 226년, 지중해 동부를 지진이 강타하고 그 와중에 거상은 쓰러진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거상 재건 비용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로도스 정부는 재건을 하지 않기로 하고 신상을 쓰러진 채로 두었다.

800여년이 지난 기원후 654년, 칼리프 무아위야 1세가 로마 제국의 손에서 로도스를 빼앗고는 거상을 에메사의 유대인 상인들에게 고철로 팔아버렸고, 그 청동 조각들을 운반하는데 900마리가 넘는 낙타가 필요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가장 먼저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후대에 세워진 여러 거상들에 영감을 줬다. 대표적인 게 자유의 여신상.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섬에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을 말하며 모든 등대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파로스의 등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파로스는 그리스어로 등대를 의미한다. 물론 어원은 이 건축물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이집트 해안선은 매우 단조로와서 항구를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 파로스의 등대는 항해의 편의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이자 헬레니즘-이집트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에 의해 건축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여 자신을 소테르(구원자 라는 뜻)로 칭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 부근의 파로스 섬에 등대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등대의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대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정확한 완공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28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치세에 그리스인 소스트라투스라는 건축가에 의해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796년 맨 꼭대기 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파괴되었다. 그 뒤로 아랍인들은 등대 팔각형의 중간 부분 위에 등댓불을 설치하여 사용하였다. 950년과 956년, 2회에 걸쳐서 팔각형 중간 부분의 외벽에 큰 금이 갔다. 그 금은 건물의 안정을 위협했기에 어쩔 수 없이 팔각형의 중간 부분을 철거해야 했고 이 부분의 해체로 등대의 높이는 22m가 줄어버렸다. 이 후 1100년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이 때 반사경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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