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특수전사령부 정보

Posted by 정보튜브
2017. 6. 26. 13:59 군대 정보/육군

육군 특수전사령부 정보





육군특수전사령부(陸軍特殊戰司令部, 영어: Republic of Korea Army Special Warfare Command, ROKA-SWC ; Republic of Korea Army Special Forces, ROKA-SF)는 대한민국 육군 특수부대로, 흔히 특전사 라고 줄여서 부른다. 3성 장군(중장)이 지휘한다. 검정색 베레모를 쓴다.


설립 근거

  • 육군특수전사령부령

임무와 표어

유사시 육지, 공중, 바다의 다양한 루트로 적진에 깊숙히 침투하여, 게릴라전, 교란작전, 정찰, 정보수집, 직접타격, 요인암살 및 납치, 인질구출, 주요시설 파괴, 항폭유도, 민사심리전, 비정규전 등 각종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구호는 "안되면 되게하라!", "귀신같이 접근하여, 번개같이 타격하고, 연기같이 사라져라"이다.

전시에 주한 미군 특수 작전 사령부과 병합되어 연합 특수전 사령부(영어: Combined Unconventional Warfare Task Force; CUWTF)로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특수전사령관은 연합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지정된다.

역사

사령부 창설 이전

한국 전쟁 동안 주한 국제 연합 유격군(UNPFK)의 제8240 유격첩보부대(켈로부대와 각종 유격대를 통합한 부대)에서 활약했던 장병들을 소집하고 백문오 대령을 초대 지휘관으로 하여 1958년 4월 1일 1전투단이 창설되었다. 부대원들은 같은 해 4월 15일부터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국 육군 특전부대(U.S. Army Special Forces; The Green Berets)의 1 특전단(1st Special Forces Group) 교육대에서 공수 교육과 특수전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인 1959년 1 공수특전단으로 부대명을 개칭했다.

1공수특전단은 대한민국 국군의 공수교육과 특수전교육의 본거지였을 뿐 아니라, 최초로 1963년부터 스키전 훈련을 실시하는 등의 여러가지 훈련 분야에서 '한국군 중 최초'라는 칭호를 가질 정도로 특수전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여러 타 특수부대들에게도 특전교육단 위탁교육을 통해 각종 훈련을 꾸준히 교육시켜주고 전파시켜주는 역할도 해왔다. 그래서 주로 산악/육상 특수전 분야와 공중침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육군 특전사는, 해상/해중 침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해군 UDT/SEAL과 함께, 한국군 특수전 교육훈련의 양대 메카이자 학교라고도 불린다.

1960년대부터 흑산도 대간첩작전과 울진/삼척지구 대간첩작전, 괴산 연풍리 대간첩작전, 북평지구 대간첩작전, 서귀포 대간첩작전 등 각종 대간첩 작전에 투입되어 무장공비들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1 공수특전단 시절인 1960년대에 공수특전단 대원들이 파월 맹호부대 파월 백마부대에 배속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맹호와 백마의 사단 공수특전대원으로 활약하며 장거리 정찰임무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다.

1969년 8월 18일 서울광역시 용산동에서 기존의 1 공수특전단과 동해안경비사령부 예하로 신설된 1, 2 유격여단을 통합하여 육군 특수 작전 부대의 통합 지휘 부대인 특수전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이 '특수전사령부'의 준말인 특전사라는 약칭 부대명도 이때 생겼다.

사령부 창설 이후

사령부 창설 이후 독자성이 강화되자 특전사 대원들만으로 구성된 공수지구대가 파월 맹호부대와 파월 백마부대에 별도 편성되었고, 1970년 3월 7일부터 1971년 3월 30일까지는 이 맹호/백마의 공수지구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

1970년대에는 부대규모의 증편이 이루어졌다. 기존엔 3개 여단이었으나, 1970년대 들어서 다수의 여단들을 추가로 창설하여, 1977년에 마지막으로 제13공수특전여단이 창설됨으로써 총 7개 여단으로 늘어났다.

1976년엔 북측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한 보복작전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특전사 예하 여단들이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1979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5·18 광주 민주화 운동(1980년)에 투입되어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을 지나,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 행사의 경호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또한 수해와 붕괴사고를 비롯한 각종 재난, 재해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어 수색, 인명구조, 부상자 치료 및 복구사업에 활약을 하였으며, 그 외에도 한강 수중정화 활동 등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국민의 부대로서의 특전부대의 위상을 점차 회복하였다.

1996년엔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 소말리아, 앙골라, 동티모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평화유지 등 각종 임무를 띤 해외파병에 앞장서서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10년엔 기존의 제5공수특전여단 흑룡부대를 해외파병 전문부대인 국제 평화 지원단으로 개편하였다.

선발 및 교육 훈련

특전병은 자원과 육군 훈련소 등의 신병교육대에서의 차출의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하여 선발된다. 특전부사관은 모병과정에 의해 민간에서 자원한 인원들 중 자격에 적합한 인원을 중심으로 선발되어 특전부사관 과정을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부상으로 훈련을 받을 수 없거나 심의에서 자격이 미달할 경우, 특전교육단에서 퇴교되거나 육군 일반부사관으로 신분이 변경된다. 그리고 특전장교는 각종 장교 양성 기관을 통해 임관한 육군 장교들이 자원 혹은 체력 우수자 등의 차출을 통해 특전사에서 근무하며, 일부는 복무중에 특전부사관중에서 장교로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을 졸업하여 임관한 초급 장교는 모두 일반부대 소대장(포병의 경우 전포대장)의 보직을 받기 때문에 특전사로 자대배치를 받지 않는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중위 이상의 계급이 되어야 자격이 주어지며 그나마도 한 기수 당 8명만 배정된다.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특전사 대원들은 각 지역의 특전 예비군에 편입된다.

조직

특전사령부의 부대단위는 군단이며 특전사령관 역시 보직분류상 군단장으로 분류된다. 현재 예하 부대로 6개의 공수 특전 여단(준장 지휘)과 1개의 단(대령 지휘) 있다. 각 여단은 4개의 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시 각 대대는 소령이 지휘하는 3개의 지역대 단위로 나뉜다. 지역대는 각 인원이 약 10명 안팎인 5개의 중대로 구성되어 있다. 특전사에선 중대를 이라고도 부른다.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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