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의원 프로필

Posted by 정보튜브
2017. 7. 7. 17:32 인물 정보/국회의원

박지원 의원 프로필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출생했으며, 2016년 만 74세로 의외로 고령이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박종식(朴鍾殖, 1910년 ~ 1948년)으로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목포시 문태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 단국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대학 졸업 후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 동서양행 등 기업에서 근무했다. 이후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가발 수출 사업을 운영하면서 80년대 초 뉴욕 한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정치 행보를 함께 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김대중 정부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으며,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북한 측이 조의화환과 함께 공개적으로 보내온 편지의 수신자 두 사람(임동원, 박지원) 중 1인이었을 만큼 DJ의 최측근으로 간주되었다.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서 현대에게서 150억원 수뢰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SK그룹에서 7000만원, 금호그룹에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2004년 최후진술에선 “입으로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관행에 젖어 잘못한 것은 처벌받겠다.”고 했다. 대북송금사건 당시 구속되어있는 동안 지병인 녹내장이 악화되어 왼쪽 눈에 이어 오른쪽 눈을 실명할 뻔 했다. 왼쪽 눈을 실명하고 의안을 착용하게 된 이유가 대북송금사건 구속 때문이라고 와전되기도 하는데 왼쪽 눈은 이미 그 전에 실명된 상태였고, 박지원 본인도 대북송금사건 재판 당시 '남은 한쪽 눈마저 실명될 위기다'라며 선처를 호소하며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통합민주당에 복당했다. 그리고 복당인사였음에도 2010년 5월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이후 2010년 7월 28일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자 당시 대표였던 정세균이 사퇴를 했고 결국 임시로 다음 전당대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5월 민주통합당의 19대 첫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는데 이 때 초대 지도부가 총선패배로 인해 모두 사퇴한 상황이었기에 역시 임시로 다음 전당대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이 때 전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당선된 이해찬 대표와의 담합 의혹이 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대선 패배 이후 원내대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자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임하고 뒤를 이었던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마저도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선거에 뛰어들었으나, 2015년 2월 8일에 열린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에서 결국 2위로 석패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22일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3월 2일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국민의당 합류 이후 목포에서 당선되어 4선의 중진이 되었다. 2016년4월 27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국민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추대된 김성식 당선인과 함께 원내대표로 만장일치 합의추대되었다. 이로써 박 의원은 2010년 민주당, 2012년 민주통합당에 이어 이례적으로 3번이나 원내대표를 맡는 진기록을 세웠다. # 2016년 6월 29일 천정배,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였고, 박지원은 만장일치로 원내대표를 겸하면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별명이 정치 9단일 정도로 현재 국민의당을 거의 먹여살리는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당장 박지원 없는 국민의당이 어찌 됐을지는 국민의당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안철수 천정배가 빠진 상황에서 박지원의 현재 당내 입지를 축구로 비유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3-14시즌 리버풀FC 루이스 수아레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지네딘 지단 정도. 2016년 12월 9일 헌정 사상 2번째로 대통령 탄핵이 진행돼 가결된 후, 서울방송사(SBS)에서 박지원을 초청해 의견을 묻기도 했다.

2016년 12월 5일 부로 김동철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을 이임하였다. 곧바로 국민의당의 당대표 및 최고위원을 뽑는 선거에 출마하기위해 원내대표직도 사임하였다. 

그리고 2017년 1월 15일, 국민의당 전국당원대표자회의에서 1인 2표제, 전국 당원 전체 투표로 200% 중 61.58%의 득표율로 국민의당의 2대 당대표로 선출되며 자신의 정치인생 중 처음으로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 대표가 되었다. 지금까지 당 대표 직함은 비상대책위원장직이 전부였으니 그야말로 말년에 성공한 정치인이 되었다.


학력

비학위 수료

명예 박사 학위


이름

박지원(朴智元)

출생일

1942년 6월 5일 (75세)

출생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본관

밀양 박씨

최종 학력

단국대학교 상학 학사

종교

가톨릭(세례명: 요셉)

배우자

이선자

자녀

2녀

소속 정당

국민의당

지역구

전남 목포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4, 18, 19, 20

소속 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보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전직

동서양행 뉴욕지사장
뉴욕한인회장
국민회의 대변인
국민의 정부 통령비서실 공보수석
제2대 문화관광부 장관
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장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국민의당 원내대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당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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